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느긋한 여행을 꿈꾼다면,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천 여행이 제격입니다. 자연과 전통, 그리고 남도 음식의 풍미까지 고루 갖춘 순천은 기차만 타면 손쉽게 도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국내 여행지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과 낙안읍성처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명소들, 그리고 현지인들이 극찬하는 맛집들까지. 여유로운 이틀 동안 순천의 진짜 매력을 가득 담아왔습니다. 기차여행이 주는 설렘과 순천이 가진 따뜻한 풍경을 함께 느껴보세요.
1. 기차로 떠나는 순천의 첫인상
기차는 언제나 여행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KTX나 무궁화호를 타고 느긋하게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기차여행은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한다. 서울에서 출발해 순천역에 도착하는 동안 시골 마을과 논밭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펼쳐졌고, 도시를 떠났다는 실감이 서서히 찾아왔다. 순천역에 내리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도시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복잡하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순천에서의 첫 일정은 ‘순천만국가정원’이었다. 역에서 버스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정원 안에는 네덜란드, 중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이 테마별로 꾸며져 있고, 꽃이 만개한 봄철이라 산책하는 내내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정원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 연못가에서 사진 찍는 커플, 그저 천천히 걷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쉼’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어서 방문한 순천만습지는 국가정원과 이어진 자연 생태 공간이다. 광활한 갈대밭과 자연 그대로의 습지가 펼쳐지는데, 특히 해 질 무렵이면 노을과 갈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목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짱뚱어나 게 같은 생물도 만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2. 낙안읍성에서 시간 여행하기
이튿날, 조금 더 깊은 순천의 역사와 전통을 느껴보고 싶어 선택한 곳은 낙안읍성이었다. 순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약 40분 정도 이동하면 조선시대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된 낙안읍성에 도착하게 된다. 성곽을 따라 둘러진 초가집과 정겨운 돌담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낙안읍성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며 전통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안에서는 다양한 체험도 가능했다. 전통한복을 입고 마을을 거닐거나, 떡메치기와 한지 공예 체험, 장작으로 지은 방에서 쉬어가는 민박도 운영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옥 마루에 앉아 전통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은 이국적이면서도 정겹게 느껴졌다. 걷는 길 내내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이 건네는 인사 한 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낙안읍성은 여행지라기보다는, 오래된 시간 속에 들어간 듯한 또 다른 세계였다. 그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는 걸 잊었고, 바쁘게 사진을 찍는 대신 그 순간의 공기와 빛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배웠다.
3. 순천에서 먹는 한 끼의 행복
기차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이동의 여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지의 맛'에 있다. 순천은 전라도답게 먹거리가 풍부하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 첫날 저녁, 순천만 근처의 ‘순천만정문식당’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탱글탱글한 꼬막과 매콤하면서도 깊은 양념, 그리고 정갈한 반찬들이 곁들여져 남도의 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식당은 방송에도 자주 소개되었고, 순천 시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 신뢰가 갔다. 둘째 날 아침에는 순천역 근처의 ‘건봉국밥’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웠다. 뽀얗고 진한 국물에 푸짐하게 들어간 고기와 고소한 밥, 그리고 깍두기 한 점이 여행의 피로를 싹 가시게 했다. 점심에는 ‘대원식당’에서 한정식을 맛봤다. 정갈한 상차림에 다양한 남도 반찬, 특히 낙지볶음과 갈비찜은 꼭 다시 먹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기 전, 간단히 치킨을 먹으려 들른 ‘풍미통닭’은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마늘 소스가 가득 뿌려진 통닭은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해 중독성 있는 맛을 자랑했다. 긴 여행의 마무리를 치킨으로 한다는 것이 어쩌면 조금 색다르지만, 그 또한 나만의 기억으로 남았다. 이번 순천 기차 여행은 그리 크거나 거창하지 않았지만,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음식이 하나 되어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무엇보다 기차를 타고 느리게 도착한 도시에서 만난 느린 일상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다음엔 또 어디를 기차로 떠나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